낮에 일하는 여자 티피와 밤에 일하는 남자 리언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됐다. 명색이 연애소설인데 한집에 살면서도 집을 사용하는 시간대가 달라 서로 마주치지 않는 주인공들이라니. 이래서 둘 사이에 호감이 생기고 연애 감정이 싹트겠나.. 독특한 설정에 둘이 어떤 과정을 거쳐 연인 사이로 발전할지 궁금해졌다. 티피와 리언이 포스트잇을 통해 소통하는 아날로그적인 감성에선 드라마 파리의 연인이 생각났다. 드라마에서 기주는 태영의 메모에 답을 해주지는 않았지만, 기주의 서랍 안에 쌓여가던 태영의 메모와 리언의 집안 곳곳에 붙여지던 포스트잇은 서로를 엮어주는 다리 역할을 한 게 아니었을까. 로맨스 소설에선 둘이 사랑만 해도 부족할 것 같은데 이 책에선 수많은 걸림돌이 존재한다. 리언의 애인 케이가 그러했고 리언의 동생..
이걸로 국내에 출간된 작가의 책은 3권을 다 읽어본 건데 3권 중 재밌었던 책이 단 한 권도 없다. 그나마 비하인드 도어가 제일 나았고(결말로 치닫는 과정이 어이없어서 그렇지) 브링 미 백이 가장 재미없었다. 뒤로 갈수록 더 좋은 책이 나와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얘기.. 그나마 우연으로 모든 사건이 한 큐에 해결되던 다소 허무했던 결말은 버린 것 같은데 같은 상황의 무한 반복 컨셉은 버리지 못했나 보다. 레일라가 실종됐던 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12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이유는 무엇인지. 레일라와 관련된 미스터리가 이 책의 핵심 사건일 텐데 1부가 채 끝나기도 전에 사건의 전모를 알아버렸다. 작가가 힌트를 너무 과하다 싶게 준 탓도 있고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어본 결과 범인은..
방문자, 소유자, 제삼자. 총 3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챕터마다 다하라 히데키, 그의 아내 가나, 그들의 협력자 노자키 순으로 화자가 바뀌며 진행된다. 간만에 읽는 일본 호러소설에 보기왕이라는 정체불명의 존재가 등장한다니. 미쓰다 신조 삘링의 호러물을 기대했는데.. 히데키가 화자인 첫 번째 챕터를 제외한 나머지를 과연 호러소설로 봐야 하는지 의문이다. 게다가 왜 챕터별로 소설의 장르가 바뀌는 것 같은지. 방문자에서 히데키가 본인은 육아와 가사를 돕는 다정한 남편으로 묘사해놨기에 가나의 입장에서 서술된 소유자는 반전 그 자체였다(양쪽 입장을 다 들어볼 필요성을 다시금 느끼네). 호러소설이 순식간에 사회소설이 되더니 마코토의 언니가 등장한 이후부터는.. 이 소설 장르가 뭐지? 싶을 뿐. 마코토의 몸에 들러붙..
전직은 프로파일러 현직은 박수무당 한준, FBI에서 퇴출된 천재 해커 혜준, 흥신소 사장 수철. 이들이 모여 손님의 뒷조사를 하고 신내림이라도 받은 '척' 뛰어난 말빨로 신상을 읊어대니 이보다 더 용한 '가짜' 점쟁이는 없는 거다. 그런데 제목에 사건수첩이 들어갔다. 점쟁이에게 사건이 생겨봤자 뭐가 더 있겠는가 싶었는데 설마 의뢰인의 집에서 귀신을 잡으려던 게 변사체 발견으로 이어질 줄이야. 우연찮은 사건으로 예은과 얽히며 경찰과 공조아닌 공조를 이어가는데 아쉽게도 여기서부터 이야기의 재미가 감소한다. 혜준이 FBI에서 퇴출된 게 게임 때문이라든가(동료들이 본업을 소홀히 해가면서까지 혜준을 이기기 위해 기를 쓰고 게임에 매달린 이유가 대체 뭔데?) 수철이 때와 장소 구분 없이 모형 권총을 들고 다니는 또..
영문도 모른 채 결혼식 당일 애인에게 버림받은 남자. 그 후로 30년의 세월이 흐르고 미즈타니는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미호코를 발견하고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말로는 우연이라 하지만 미호코의 친구 페이지에 들어가 댓글을 살펴보고 사진 속 창유리에 비친 얼굴을 확대해보는 둥 자신이 발견한 사람이 미호코가 맞는지 확인하는 모습은 집요하기까지 하다. 답신이 없는데도 계속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2년에 세 통이긴 해도) 미호코가 그린 그림을 프린트해서 벽에 붙여 두는 것도 께름칙하다. 이런 집착심이라면 진작에 미호코의 흔적을 찾아서 연락하고도 남았을 것 같은데 30년이 지나서야 미호코를 찾은 것(본인은 우연이라고 했지만), 오랫동안 인터넷 같은 것과 인연이 없는 삶을 살았다는 걸 보니 그동안 미호코를 찾고 싶어..
법은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닌가 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그런 생각이 더욱더 강하게 든다. 생활이 어려워서 기초수급 신청만이 살길이지만 신청서를 작성하는 것부터 난관의 연속이다. 있는 것을 증명하기는 쉽지만 없는 것은 대체 어떤 수로 증명을 해야 한단 말인가. 그렇게 깐깐한 기준으로 서류 심사를 통과시킴에도 부정수급자가 발생하는 것도 난센스다. 통장의 잔고는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고 반찬이 없어 맨밥에 조미료를 뿌려 하루하루를 버텼지만, 그마저도 금세 동나버렸다. 굶주림을 참기 위해 케이 할머니는 길에서 나눠준 휴지를 씹어 삼킨다. 전기와 가스가 끊기고 수도가 끊기는 것도 시간문제다. 굶주림과 갈증. 어느 쪽이 더 괴로울까. 돌보지 않는 집은 점점 엉망이 되어가고 집안에서는 시큼 달달한 가..
북플라자에서 나온 '상냥한 저승사자를 기르는 법'의 스핀오프다. 같은 작가의 시리즈물인데 왜 전혀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이 됐는지 모르겠다. 전작에서는 강아지의 몸에 들어간 저승사자가 호스피스 병원에서 환자가 죽은 뒤 지박령이 되는 것을 막고자 사람들의 미련을 해결하기 위해 애를 썼고 이번 이야기의 저승사자는 이미 지박령이 된 혼을 '우리 주인님'의 곁으로 인도하기 위해 애를 쓴다. 미련을 해결해줘야 할 대상은 산 사람 vs 지박령이지만 시리즈물이라선지 각각의 사연이 하나의 큰 사건으로 묶이는 전개는 비슷했다. 최종보스의 혼이 너무나도 더럽혀져 저승사자의 스킬인 최면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과 인간의 마음을 이해 못 하던 저승사자가 점점 인간다운 감정을 갖는다든지 모든 사건이 해결된 뒤에도 동물의 몸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