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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타치바나 베니오

그림 : 미야기 토오코

누군가에게 입 맞추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처음이었다

 

남자이면서 기녀 못지 않은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유곽에서 태어나 자란 미사오에게 있어, 사람의 정이란 매일 같이 변하는 것이라 사랑 따위 의미 없는 넋두리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그런 어느날, 토우와 재벌의 후계자, 토우와 마사오미가 우키쿠모 오이란의 손님으로서 유곽을 찾아온다. 유곽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고 언제 어디서나 예의 바른, 이곳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마사오미. 다정한 그를 만나, 미사오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끼는 감정에 당혹하고, 상처받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사랑에 사로잡혀….


 


평소였으면 표지만 보고 이것은 유곽, 기녀, 남창. 딱 내가 싫어하는 소재 모음이네 싶어 걸렀겠지만, '세븐데이즈'의 영향으로 타치바나 베니오의 정발된 작품은 죄다 쓸어 모았던 탓에 이 책도 같이 사게 됐던 것 같다. 삽화가 미야기 토오코라는 것도 한몫 거들었어.

책을 사긴 했지만 기루 소재는 역시 내키지 않아서 한참을 방치하다 집었는데 와.. 타치바나 베니오의 소설 중 이 책이 제일 마음에 드는 아이러니가. 미사오가 남창으로 나왔더라면 이렇게까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을 지도 모르지만(에다 유우리의 '화려한 어둠'이 그지같았던 것처럼).

배경이 유곽에 미사오가 유곽에서 태어난 아이다보니 전개는 다소 뻔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미사오가 마사오미에게 연심을 품어가는 과정이 섬세하게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작가가 같은 사람이라 그렇겠지만, 소설판 세븐데이즈를 읽는 듯한 기분이랄까. 실제 미사오와 마사오미가 만나 사랑에 빠진 기간이 일주일 이내이기도 했고.

 

 

"─미사오."

 

복도 쪽으로 물러가려고 일어선 미사오를 마사오미가 자리에 앉은 채 불러 세우고, 흔들림 없는 눈빛을 보내왔다.

 

"가능하면, 내게 오는 대리는 언제나 너였으면 좋겠어."

 

미사오는 입술에 꽈악 힘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뒷머리가 당겨지는 듯한 느낌을, 고개를 휙 돌리며 억지로 끊어내고 안쪽 복도로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카즈시가 옆으로 따라와 걸으면서, 손들었다는 듯이 히죽히죽 웃으며 미사오의 귀에 대고 말했다.

 

"거참, 마사오미 도련님 앞에선 보통 때보다 한층 더 가련한 연기를 하시는구만."

 

"…무슨 소리야."

 

시선도 주지 않고 걸음도 멈추지 않은 채 중얼거리듯 대꾸했다. 카즈시가 들릴락 말락 한 소리로 키득거린다.

 

"시치미 떼긴. 저는 오직 나리뿐이에요─라는 태도로 매달린 주제에."

 

그 말에 미사오가 문득 걸음을 멈추자, 카즈시는 계속 웃으면서 왜? 하며 돌아보았다. 그러나 미사오의 얼굴을 본 순간 입을 쩍 벌렸다.

평소에는 코웃음 치며 뻔뻔하게 상대의 야유를 넙죽넙죽 받아 넘겨온 미사오가, 지금은 달아오른 목을 한 손으로 누르고 움츠리며 수줍어하고 있으니 깜짝 놀란 것이다.

미사오의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처음 본 카즈시는 놀란 나머지 잠시 아연해져 있다가, 불현듯 뭔가를 깨달은 표정으로 허탈하게 말했다.

 

"…농담이지? 하나도 안 웃겨."

 

"딱히, 웃어달라고 한 적 없어."

 

퉁명스럽게 내뱉고 도망치려하는 미사오의 어깨를, 카즈시가 휙 잡아서 뒤로 돌려세웠다.

그리고 그 기세로, 강하게 질책했다.

 

"바보야, 너 지금 무슨 잠꼬대를 하는 거야! 상대는 오늘이라도 오이란의 단골손님이 될까 말까한 그런 손님이라구! 사는 세계가…"

 

"그런 거 나도 알아!"

 

마지막까지 말하지 못하도록 버럭 소리를 질렀다.

미사오의 아픔을 참는 듯한 얼굴을 본 카즈시가, 하려던 말을 스스로 삼키고 입을 다물었다.

두 사람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덮친다.

 

"…안다구…."

 

객실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묻혀 지워져버릴 것 같은 나약한 목소리로 반복해서 말하고, 미사오는 한 손으로 자신의 팔을 감쌌다.

방금 전 마사오미의 손에 잡혔던 그 부분을, 꾹 움켜쥐며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마사오미는 우키구모의 것. 결코 자신의 것이 될 수 없음을 알면서도 마사오미를 향한 마음이 깊어져 가는 걸 어찌하지 못하는 미사오의 모습이 너무 애틋하게 그려진 이 장면은 소설을 통틀어 좋았던 부분 중 하나이다. 미사오가 마사오미에게 입맞춤을 한 뒤 마사오미의 입술에 묻은 연지를 닦아 내는 장면도(미야기 토오코의 여리여리한 삽화 분위기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져서 더 애정이 가는 장면이었다).

기루를 떠나 도쿄로 향했을 마사오미와 미사오의 모습을 어딘가에서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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